달성군 다사읍 방천리
*자연환경*
방천리는 말발굽처럼 놓여 있는 와룡산(臥龍山)[299m]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북쪽에는 금호강(琴湖江)이 흐른다.
변천 및 현황
대구부 하동면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과정에서 다사면으로 재편되어 경상북도 달성군 다사면 방천동이 되었다. 1988년 동(洞)이 리(里)로 바뀌면서 방천리가 되었고, 1995년 3월 1일 달성군 전역이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어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면 방천리가 되었다. 그 후 1997년 11월 1일 다사면이 다사읍으로 승격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나의 행정리로 구성된 방천리는 다사읍 동부에 위치하며 문화류씨(文化柳氏)의 세거 집성촌이었다. 와룡산이 마을의 동쪽과 남쪽, 서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그 아래 `원마`, `안마[李班]`, `중마` 등의 여러 자연마을들이 산재해 있었으나 1990년도부터 와룡산 골짜기에 위생 매립장이 조성됨에 따라 점차 마을들이 소멸되어 2015년 12월 31일을 기준으로 총 4가구에 7명[남자 5명, 여자 2명만이 거주하고 있다. 사람들이 떠나간 곳에는 `문화류씨세천지(文化柳氏世阡地)`를 조성하여 `방천리망향비(坊川里望鄕碑)`를 세우고, 문화류씨 문중 재실인 `여호재(驪湖齋)를 신축하였다.
연혁
1973. 교량 가설
(사업비 40만원으로 폭 4.2m, 길이 7.2m 설치)
1974. 교량 가설
(사업비 1백만원으로 폭 5.1m, 길이 12m 설치)
농로 확장
(사업비 1백 50만원으로 총연장 1,000m 공사)
1976. 교량가설
(사업비 46만 2천원으로 폭 4.8m, 길피 6m 설치)
1978. 소류지 보수
(사업비 1백 9만원으로 높이 3m, 길이 22m 공사)
1979. 마을회관 건립
(사업비 2백 90만원으로 건평 15평 건립)
소하천 복개
(사업비 72만 4천원으로 1개소 4m 공사)
1980. 마을진입로 포장
(사업비 1백 59만원으로 폭 3m, 총연장 120m 공사)
마을안길 포장
(사업비 23만 7천원으로 폭 2.5m, 길이 200m 공사)
1990. 대구광역시 위생매립장 매립 업무 시작
2006~2011. 대구광역시 위생매립장 매립 시설 확장 공사
22007. 대구광역시 위생매립장에서 대구광역시 환경자원사업소로 개칭
지명유래와 건설
안마(李班)
원마 안쪽에 있다고 하여 `안마`라고 한다. 또한 1557년 선조(宣祖)때 류희상(柳希祥)이 입향하여 살면서 류씨들의 세거 집성촌이 된 이후로 `유반(柳)`이라 부르다가 지금은 `이반(李자)` 으로 부른다고 한다.
중마
방천리의 가장 중앙에 있다고 하여 `중마`라고 하며, 원마의 아래쪽에 있다고 하여 `아랫마` 라고도 부른다.
방천(坊川)
마을 앞을 흐르는 금호강의 제방이 아주 견고하고 단단하게 축조되었다고 하여 `방천(川)` 이라 부른다.
와룡산(臥龍山)
방천리와 서재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이 산과 다른 산셋을 합해서 보면 마치 용이 엎드려 있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와룡산의 영험함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는데, 용머리 부분인 와룡산 꼭대기에 무덤을 쓰면 그 묘 주인은 큰 부자가 되지만, 그 무덤 일대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가뭄만 닥치면 괭이와 삽을 든 마을 사람들이 와룡산에 올라가 매장된 송장을 찾아내어 화장시켰다고 한다.
여호재(驪湖齋)
문화류씨의 재실이다. 원래는 와룡산 자락에 있었으나 위생매립장 이 조성됨에 따라 1993년 `문화류씨세천지(文化柳氏世硏내에 현대식 건물로 새로이 건립하였다. 1891년에 쓰여진`여호정기(精舍記)`가 전해진다.
척호정(陟岵亭)
일제강점기 때 유학자이자 자선가이었던 오려(吾廬) 류기춘(柳基)[1884~19601의 강학정이다.
대구광역시 문화원 연합회 2018년 달성문화원 발행
달성 마을을 품다에서 拔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