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연혁(文化懸沿革)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06-24 12:04:35 조회수 : 4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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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연혁(文化懸沿革)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驪湖誌에서拔萃
譯文
고대 단군조선 때 당장경(唐藏京)이었는데 고구려 때에 이르러 궐구현(闕口懸)으로 일컬었다. 고려 초기에 유주(儒州)로 고쳤더니 성종 때에 시령(始寧)으로 바뀌고 현종 9년 (무오, 1018년)에 풍주(豊州)에 예속시켰다가 예종 원년 (병술, 1106년)에 유주로 복구하여 감무(監務)를 두었다. 고종 46년 (기미, 1259년)에 위사공신 류경의 고향이라 하여 문화로 개칭하는 동시에 현으로 승격시켜 현령(縣令)을 두었다. 조선조에 이르러서도 그대로 따라 황해도에 예속시켜 현령과 훈도(訓導)를 각 1인씩 두었다. 광해군 10년 (무오, 1618년)에 부(府)로 승격시켰다가 곧바로 현으로 강등시켰다. 고종 32년 (을미, 1895년)에 군(郡)이 되었더니 순종 4년 (경술, 1910년) 한일합방 이후 병합되어 신천군(信川郡) 문화면(文化面)이 되었다. 본현(本懸) 서쪽으로 십리 쯤에 구월산이 있으니 곧 아사달산(阿斯達山)으로 일명 궁홀(弓忽)이요, 일명 증산(甑山)이요, 일명 삼위(三危)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께서 처음 평양에 도읍 하였다가 후에 백악(白岳)으로 옮겼으니 곧 구월산이다. 주나라 무왕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封)하니 이때 단군께서 이곳 당장경으로 옮겼다가 후에 이 산으로 숨어 신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조에 이르러서도 이곳에 삼성사(三聖祠)를 지어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 삼위(三位)를 모시고 향사(享祀)하였다. 문화현 현청(懸廳)으로부터 동쪽으로 안악군계(安岳郡界)까지 삼십리요 북쪽으로 장연현계(長連懸界)까지 사십리이며 경도 한양까지 사백칠십칠리이다. 이 문화 고을의 풍경을 읊은 제영시(題詠詩)2수가 있는데 조선 초기의 문신 이초(李椒)는 이르기를 "인사(人事)는 기한이 있어 서로 바뀌는데 계산(溪山)은 옛과 같이 스스로 맑도다." 하였고 김처례(金處禮)는 이르기를 "시냇가에 해가 길으니 증천(甑川)이 따사롭고 하늘 끝에 구름이 열리니 월악(月岳)이 기이하다." 하였다. 우리 시조 대승공 묘소는 구월산 남록(南麓) 인좌원(寅坐原)에 있으며 묘소 오른편에 재실이 있으니 이른바 경사루(敬思樓)로써 곧 제숙(齊宿)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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